뉴질랜드 테아나우 호수에서 밀포드 사운드까지

58km의빙하지형 산길을 걷는 트레킹

테아나우 호수에서











밀포드 사운드까지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길 - 뉴질랜드 남섬 밀포드 트레킹

숲 그 그윽한 원시성

산길은 시작부터 하늘을 가린 울울창창한 숲이다. 나무가 얼마나 큰지 위쪽을 쳐다보아도 끝이 가름조차 되지 않고 밑동도 우람하기 그지없다.

이끼의 천국이다. 나무 마다 이끼가 덮었고 숲 속은 맨 땅까지 온통 이끼다. 수염 달린 이끼, 꽃 같은 게 핀 이끼, 덩굴 이끼, 풀처럼 큰 이끼, 물방울로 반짝이는 이끼 등 여러 꼴의 이끼가 나무를 뒤덮어 모든 나무가 고목처럼 보인다. 숲 속 길만은 검은 흙이 잘 다져졌다.

줄기에 붙은 이끼를 눌러보니 손가락 두 마디가 쑥 들어간다. 이끼 두께가 3-4cm, 어떤 것은 10cm가 넘는다. 이끼가 안방을 차지한채 수염 같은 실뿌리를 주렴처럼 느려 녹색 휘장이 나붓기는 듯하다.

뉴질랜드 남섬 산악지대의 한해 평균 강우량은 3000mm안팎, 트레킹 날머리인 밀포드사운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우지역으로 평균6000mm 이상이다. 그래서 나무나 풀이 이렇게 잘 자라고 이끼가 이렇게 번성하는가.

등산은 봉우리라는 하늘에 맺힌 점을 향해 가는 것이라면 트레킹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선을 따라 이동한다. 등산은 온갖 고통을 인내로 극복하고 정점인 봉우리에서 짜릿한 ‘극기의 절정’을 즐기지만 이게 끝나면 허전하고 조금 시들해지기 마련. 트레킹은 이동이 끝날 때까지 뚜렷한 절정은 없지만 이어지는 즐거움과 감격적 정경에 오랫동안 휩싸인다.

숲이 얼마나 짙은지 햇볕까지 걸러진다. 나무와 나무, 줄기와 잎 사이로 간신히 스며들어온 햇볕이 숲 속 연녹색공간에 황금빛 나래를 펴면 황녹색 스펙트럼이 환상의 군무를 펼친다. 우리를 지배하던 감성과 이성의 팽팽한 균형은 슬며시 무너지고 한없는 부드러움이 봇물처럼 밀려들면서 야릇한 쾌감의 환상에 빠져든다. 시원한 그늘에서 즐기는 한여름의 낮잠 같은 그런 시간을 이 숲이 안겨준다.

밀포드 트레킹은 테아나우 라는 호수 끝의 배 선착장에서 시작해 다시 배를 타야하는 다른 선착장까지 산길 58.4km다. 첫날은 선착장서 산장까지 1.2km를 가서 숙박, 둘째 날은 다음 산장까지 16km, 셋째 날은 그 다음 산장까지 19.6km, 넷째 날은 종착지인 선착장까지 21.6km다.

한국의 둘레 길은 큰 산 자락을 빙 도는데 밀포드 트레킹 58.4km는 천야만야한 직벽의 바위산과 바위산이 마주보는 협곡을 걷는다. 호수 선착장에는 내리자마자 긴 사각형 통에 소독약물이 있다. 누구든 이 통에 신발을 소독해야 한다.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로부터 묻어올지 모르는 풍토병을 예방해 숲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크린턴이란 강에 걸린 출렁다리를 건너는 것으로 본격적인 트레킹의 막이 오른다. 숲길은 걸을수록 강렬한 원시성의 최면에 빠진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온다고 하는데 풀은 겨울에도 죽지 않는지 대단히 크고 무성하다.

트레킹 넷째날은 비가 내렸다. 안개와 비에 젖어 어둠침침해지자 숲은 햇볕이 쏟아질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키 큰 고사리 등 양치류까지 숲을 이뤘고 덩치 큰 풀, 이끼 덮은 채 하늘로 뻗은 어마어마한 나무, 이끼가 감싼 채 넘어져 즐비하게 널려있는 고목. 이곳은 주로 너도밤나무가 주종이다.

영화 ‘쥬라기공원’의 숲이 풋풋하게 살아나고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움직이는 나무가 금방 눈앞에 나타난다. ‘아바타’의 주인공들이 괴상한 새를 타고 훨훨 날아다닌다. 신령한 거목이 숲속 한가운데 있다. 괴기롭고 음산한 원시의 숲은 온갖 환영과 착각으로 눈앞에서 일렁댄다.

이 나라는 이런 자연환경 때문에 영화산업이 발달했다. 뉴질랜드 산업은 제1위 농목축업, 2위 영화, 3위가 관광업. 영화 ‘반지의 제왕’ ‘버티칼 리미트’ ‘라스트 사무라이’ 를 비롯 한국 영화 몇 편도 이 나라서 촬영했다. 뉴질랜드 수려한 풍광을 세계에 알린 ‘반지의 제왕’ 덕에 관광객이 많이 와 이 나라 GDP를 3%나 끌어올렸다고.

숲길만이 아니다. 숲 없는 빈터, 강이나 냇가도 대단한 풍광에 어리둥절하게 된다. 셋째날은 1154m의 봉우리를 오르는데 길이 야생화가 만발한 풀밭 기슭에 지그재그로 나있다. 앞엔 눈을 인 봉우리가 홀립하고 아래편 골짜기는 짙은 숲, 내, 호수가 어울려 끝 간 데 없다.

이곳 숲에는 소나무나 참나무류가 보이지 않는다. 새는 있지만 산돼지나 곰 토끼 등 짐승이나 뱀 개구리도 없다. 포유류는 박쥐뿐이란다. 이 트레킹 코스는 뉴질랜드 피요르드 국립공원에 포함돼 있고 유엔인 정한 세계 문화유산이다. 하루 트레킹 허용인원은 50명. 산길에는 담배꽁초나 비닐, 종이 조각 하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산길 어디서든 방뇨 등 실례를 하지만 이곳 숲길은 너무 정갈하고 엄숙해 그럴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자기도 모르게 먹던 과일 씨까지도 싸서 주머니에 넣게 된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숲에 샌드플라이라는 날파리 같은 게 사람 피를 빨아먹는데 물린 피부를 긁으면 며칠동안 무척 가렵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의 접근을 막으려는 신의 섭리인가. 하지만 선과 선을 이동하는 유쾌함이 추억으로 여울지는 밀포드 트레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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