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양력설을 신정(新正)이라고 하며, 음력설을 구정(舊正)이라고 부른다. 중국에서는 양력설을 원단(元旦)이라고 하며, 음력설은 봄에 맞는 명절이라고 해서 춘절(春節)이라고 부른다. 한·중(韓·中)간의 공통점은 양력설과 음력설이 모두 명절로 공휴일이지만 음력설 연휴가 더 길며, 음력설인 구정과 춘절을 최대의 민족명절로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물론 두 나라지간의 설을 쇠는 방식과 내용은 다르지만 또 하나의 같은 점이라면 설 연휴를 계기로 경-향(京-鄕) 민족(인구)대이동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연휴기간은 중국이 한국에 비해 훨씬 더 길며, 명절에 부여하는 의미도 더 크다.
한국의 음력설인 구정은 민족 최대의 명절로 각광받지만 온 가족이 조상의 산소에 가서 벌초 및 제례를 갖추는 추석(秋夕)에 비해 명절지위와 중요성은 좀 손색이 있고 버금간다. 그런 의미에서 황금계절인 가을에 고향에 가서 조상의 산소에 제사를 지내는 추석이야말로 한국인들에게 있어 진정한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단적인 예로 평소 한국인들은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추석명절에 고향에 못가면 ‘죄의식’을 느낄 정도지만 새해를 맞이하는 가족모임의 명절인 구정[구정에는 대부분 집에서 차례(茶禮)를 지낸다]에는 상대적으로 그런 느낌이 덜해진다. 또한 작년 추석에는 1주일 ‘황금연휴’가 이어졌지만 금년 구정 연휴는 고작 3일로 대부분 정월 대보름까지 이어지는 중국의 춘절(연휴)에 비길 바가 못 된다.
한국인들은 현재 단 하루만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는 양력설(新正)에 비해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을 중요시하여 음력설(舊正)을 더 큰 명절로 여겨왔다. 이런 점을 감안해 1985년 한국정부는 전통적인 설 명절인 음력설을 ‘민속의 날’로 정했고, 1989년에는 해방 후 한동안 인정해오지 않았던 음력설을 정식명절로 인정하고 3일간의 공식 공휴일로 선포했다. 현재 음력설은 한국의 연중 가장 중대한 명절의 하나로 인정되며, 대부분의 가정들에서는 차례 및 세배와 같은 전통적인 명절풍습이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구정이라는 현재의 (음력)설에 대한 호칭은 일제시대의 산물로 삼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오면 한국인들은 차례를 지내 조상의 음덕(蔭德)을 기린다. 설날아침에는 가족들이 모여서 정초의 차례를 지내는데, 이는 모처럼 자손들이 모두 모여 오붓하게 지낼 수 있는 기회다. 차례와 함께 민족복장을 한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은 집안의 웃어른에게 순서대로 세배를 올리며, 차례의식이 끝난 후 온 가족이 모여 떡국으로 마련한 세찬(歲饌)을 먹게 되는데 이는 음복(飮福)의 의미를 지닌다. 또한 아이들에게는 세뱃돈을 주며 덕담을 나누고 한해의 운수대통을 축원해준다. 어른들은 세주(歲酒)를 마면서 친지간에 정을 돈독히 하며, 한편에서는 고스톱과 윷놀이판을 벌여 명절의 분위기를 돋운다.
구정 연휴기간에는 대규모의 민족대이동이 시작된다. 지방으로 가는 비행기티켓과 KTX, 새마을과 무궁화호 열차표는 일찍 좌석이 매진되어 벌써부터 품절이다. 고속버스터미널도 환고향하려는 고객들로 붐비고 있고 연휴기간 내내 서울-지방의 상 · 하행 고속도로는 귀성 · 귀경하는 차량 정체로 극심한 몸살을 앓는다. 그것은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자가용으로 고향나들이를 하기 때문이다. 자동차강국의 신세를 톡톡히 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설 연휴기간 시민들이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보는 TV 뉴스가 고속도로 관련 교통정보다. 한마디로 ‘인구이동’보다 ‘車이동’이란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금년 설에는 원화강세, 엔화약세로 일본 등 해외로 출국해서 구정을 보내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음력설인 춘절을 일년 행사 중 최대의 명절로 간주한다. 1주일 이상의 긴 춘절연휴가 시작되면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불원천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설을 쇤다. 그리하여 전란 중 피난민을 상상케 하는 민족대이동이 중국전역에서 진행된다.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일이면 미국인들은 주로 비행기로 고향방문을 하고 한국의 추석이나 음력설이 되면 한국인들은 주로 자가용으로 고향나들이를 하는 반면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열차를 이용해 환고향하며, 춘절 연휴를 계기로 억을 헤아리는 인구가 동서남북으로 이동한다.
현재 중국사회가 경제중심사회로 부상함에 따라 농촌의 많은 잉여 노동력들이 도시에 진출해 건축업과 각종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은 거의 일년 내내 가족과 떨어져 타향에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있다. 그러다가 음력설이 다가오면 무조건 환고향해 가족과 함께 설을 쇤다. 서울에서 부산 및 광주로 돌아가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8~9시간이라면 중국인들이 노상(路上)에서 보내는 시간은 2~3일이 걸린다. 하지만 부자가 된 심정으로 ‘금의환향’하는 그들의 마음은 가볍기만 하다. 또한 중국인들의 특유의 인내력이 발휘되는 장소로 중국인들의 장시간의 노정은 대장정을 방불케 하며, 드라마 속의 극적인 화합 · 대단원을 연상케 한다. 음력설은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만남의 명절’이기도 하다.
중국인들은 음력설이면 행운을 비는 부적과 같은 장식품을 집안 곳곳에 붙이는 풍습이 있는데, 이런 장식품은 거의 붉은 색이다. 예전부터 붉은 색을 길(吉)하다고 여긴 중국인들은 춘절이 되면 현관문에는 붉은 색으로 만든 각가지 복(福)자를 거꾸로 붙이는데, 이는 중국어로 '福倒'라는 의미로 '복이 온다(福到)'와 발음이 같고 새로운 한해 가정에 행복이 깃들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중국어로 魚(yu, 물고기)는 풍족하고 남는다는 뜻의 餘(yu)와 발음이 같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춘절인사로 ‘年年有餘(해마다 풍족한 생활을 바란다는 뜻)’라고 덕담을 주고받는다. 황금돼지해인 금년에는 돈 모양의 황금돼지 모형들이 명절선물로 각광받고 있는데, 돼지는 평소 중국인들이 '복'스럽다고 생각하는 길상(吉相)의 동물이다.
한국에서는 음력설이면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는 뜻으로 떡국을 먹는다. 떡국은 꿩고기를 넣고 끓여야 하지만 꿩고기가 없을 땐 닭고기를 넣고 끓이는데,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는 속설이 유래되었다. 중국의 전통적인 설날 음식은 만두이며, 중국어로 교자(餃子)라고 한다. 교자가 설날의 필수음식으로 된 것은 또 교자의 모양이 고대 돈(元宝)과 비슷해 새해에 먹으면 재운(財運)과 복이 온다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교자에 갖가지 길한 음식물로 소를 만들어 새해의 소원성취를 기원하고 생활이 더 달콤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사탕, 건강장수를 비는 낙화생(땅콩), 생남을 기원하는 대추와 밤 등으로 교자의 소를 만든다. 교자는 역사가 오랜 민간음식으로 중국인들이 설 명절에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다.
중국인들이 춘절 연휴기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섣달 그믐날밤 중국 CCTV에서 약 4~5시간에 걸쳐 방송하는 춘절야회(春節晩會)로 시청자가 10억대에 달한다. 자정 무렵 중국전역의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폭죽소리는 공포의 전쟁을 방불케 하는데, 이는 한해의 액운을 쫓고 새해에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로 통한다. 해마다 설 명절이면 정월대보름까지 이어지는 폭죽놀이는 많은 이들이 상하고(금년 춘절 북경에서만 폭죽사고로 125명의 눈을 다쳤다고 함) 화재사고가 발생해 국가에 많은 손실을 가져오고 있다. 안전사고와 환경문제로 정부의 관련 규제가 심화되고 있지만 전통적인 민속놀이는 향후에도 지속될 것이다.
해마다 고향에 돌아가 가족과 함께 하는 설 명절이 오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가족과 떨어져 설을 쇠는 이들이 있어 가슴 아프다. 선진국에 진입하는 한국이나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중국을 막론하고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소외된 빈곤층과 고독하게 만년을 보내는 독거노인들이 적지 않다. 다행인 것은 중국에서는 정부지도자들의 ‘紅包(돈을 싼 붉은 종이)’ 형식으로 정부 보조금이 지급되며, 한국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의 봉사활동이 진행된다. 금년에는 불효자인 필자도 해외에서 설을 쇤다. 아마 많은 동포들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다소 외롭게 설 명절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더 무겁기만 하다.
더욱 많은 이들이 고향에 돌아가서 가족과 함께 행복하고 근심걱정 없는 유쾌한 설 명절(춘절·구정)을 보낼 수 있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런 풍족한 사회의 도래를 두 손 모아 기대할 뿐이다.
<김범송 칼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