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고옥(古屋)


溫報에 따르면 독일 트리어 시에 있는 마르크스의 옛집이 곧 매각될 것이라고 한다. 이 집은 마르크스가 태어나 17세 때 본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청소년 시절을 보낸 곳이므로 마르크스 숭배자들에게는 소중한 기념물일 것이다.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성지(聖地)로 떠받들 수도 있는 고옥이 무슨 연유로 매각되는 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크게 보면 사회주의의 퇴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이 집에 관심을 제일 많이 보인 사람들은 중국인 관광객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르크스 박물관 관계자는 어쩌면 중국대사관에서 이 집을 구매할 지도 모른다는 농담까지 한 모양이다. 자본주의적 방식을 통해 급속한 경제성장을 실현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중국인들은 아직도 마르크스를 기억하고 있는가. 독일을 관광할 수준이라면 자본주의의 혜택을 누리는 부자들일 텐데 그들은 왜 한물 간 마르크스의 흉상에 헌화하는 것일까.

20년 전 세계사회주의가 도미노처럼 무너질 때 동유럽 각국에서는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인물들의 동상도 덧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 자리에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의 가장 진화한 형태인 신자유자의의 깃발이 기세 좋게 펄럭였다. 중국 역시 시장사회주의라는 얼핏 보면 형용모순에 가까운 이념을 내걸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누가 보더라도 자본주의로 돌아섰다. 그래도 천안문 광장의 모택동 초상화는 철거되지 않았다.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여러 사상들을 편안히 소화하는 중국인들이고 보면 중국자본주의가 더욱 발전한 후에도 그들은 사회주의의 덕목들을 기억할 지도 모르겠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자였지만 그가 공산주의에 대해 언급한 내용은 많지 않다. 공산주의와 관련된 그의 단편적인 언급들마저도 프랑스의 급진적 사회주의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가 평생을 바쳐 연구한 것은 자본주의였다. ‘자본론’을 통해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작동원리를 현미경적 관찰력으로 파헤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붕괴한다는 결론이 아니라, 그를 통해 드러난 자본주의의 실상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공격만 했던 것은 아니다. ‘공산당선언’에서 그는 부르주아지들에 의해 주도되는 자본주의적 생산방법의 효율성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제대로 발전하지 않고서는 공산주의로 갈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그의 예측과는 달리 혁명의 기운이 후진국 러시아에서 감지되었을 때 마르크스는 무척 당황하고 고뇌했다. 러시아 혁명가들의 거듭되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내 유보적 입장을 취했고, 마르크스의 확신을 얻지 못한 ‘현실사회주의’는 결국 70년 만에 해체되고 말았다. 마르크스의 과오는 자본주의의 생명력을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본주의의 죽음을 볼 작정이었지만 그가 죽은 지 120년이 지난 지금에도 피둥피둥 살이 오른 자본주의는 정정하게 굴러가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깃발 아래 자본주의가 거침없이 내달릴수록 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파악한 그 본래의 전율스러운 모습을 회복하고 있다. 우리가 마르크스를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의 방법이 옳아서가 아니다. 그를 기억하지 않고는, 자본주의의 무한질주에 매몰되어서는, 인류의 역사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마르크스의 옛 집이 헐리지 않기를 바란다. 중국정부는 이제 돈도 많이 벌었으니 외국기업 사냥에만 몰두하지 말고 마르크스의 고옥을 구매해서 잘 관리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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