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고도(茶馬古道)”의 시발점 - (茶)

(茶)는 일명 명(茗)이라고도 부릅니다.

중국은 차의 원산지중에 한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차를 발견하고 이용한 나라입니다. 뿐만아니라 차나무 자원도 가장 풍부한 나라입니다. 중국에서 차를 마시기 시작한 그 역사는 멀게는 신농시대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이미 수천년의 역사를 경과하였습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50여개 나라에서 차를 재배하고 160여개 나라와 지역에서 근 20여억되는 인구가 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안자 춘추》에 기록한데 의하면 안영이라는 사람이 차를 마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육우의다경·칠지사에서 보면안영이 제나라 재상으로 있을때 곡밥을 먹지 않고 야생으로 생활했는데 그중 차로 만든 요리를 먹었다.”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그때 명() , 차는 일종의 음식으로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것이 차에 관하여 기록된 최초의 문자기록입니다.

(茶)가 서민들 생활에 광범위하게 쓰이게 된것은 청나라 고연무(炎武)의 일지록(日知)》에서 알수 있는데 여기에서 보면 “진나라가 촉나라를 얻은 후 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에 근거하면 진나라가 파,촉나라를 멸한 후 차를 마시는것이 전파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으로 보았을때 파,촉나라 지역의 차를 마시는 역사는 더 유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솽반나 멍하이 난나산 고차수-수령100-800년된 야생 고차수 지역]

당나라때에 와서 차문화의 발전은 현저하여 《다경과 기타 문헌에 근거하면 당나라때 찻잎의 생산지는 이미 사천(四川), 섬서(西), 호북(湖北),운남(云南), 광서(广西), 귀주(), 호남(湖南), 광동(广), 하남(河南), 절강(浙江), 강소(江), 강서(江西), 복건(福建), 안휘(安徽), 해남(海南)의 15개 성과 지역에 파급되어 근대의 차 생산지와 범위랑 거의 비슷하게 되었습니다.

송나라때에 찻잎의 생산량은 사천이 가장 많았고 청나라 때는 국내시장과 대외무역의 수요로 차나무 재배구역이 확대되어 그 면적과 생산량은 급격하게 증가하였습니다.

찻잎은 차나무의 여린 새싹을 가공하여 건조시킨 후 만들어 냅니다. 찻잎을 뜨거운 물에 넣어서 충분히 우려서 마시면 정신이 맑아지고 눈이 밝아지고 비뇨에 이롭고 해독하는 등등의 효과가 있습니다.

차를 마시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고대에는 비교적 간단하고 원시적인 방법으로 직접 찻잎을 가마에 넣어서 삼아내는 “찜차(煮茶)”가 있었고 짙은 차를 응고시켜 그 표면을 죽모양으로 만드는 “명죽(茗粥)” 바로 “차죽(茶粥)”이 있었습니다.

또, 당나라부터 청나라때까지 사용해왔던 방법중 하나는 차에 생강과 소금을 넣고 같이 끓여서 우려내는 “오차(熬茶)”도 있었습니다. 오늘날에 와서 보면 서로 다른 6개 유형의 찻잎이 서로 다른 나라와 지역과 민족간에 사용되고 있는데 그 마시는 방법도 각자 자기의 독특한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방법에 내재되어 있는 그 정신적인것과 문화적인 면은 오늘날의 “차예(茶藝)”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의 소수민족 지역에서는 지금까지도 그 차문화의 역사와 풍습을 지키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서로 다른 민족의 자연환경과 음식문화로 인해 여러가지 유형의 차마시는 방법들이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운남성의 싸니족 (撒尼族)의 뚱후차(铜壶), 리쑤족(傈僳)의 유우앤차 (油), 레이샤이차(雷), 이족(彝族)의 허타우미화(核桃米花茶), 백족(白族)의 삼도차(三道茶), 뿌랑족(布朗族)의 칭주차 (竹茶), 와족 ()의 사우차(),주퉁차(竹筒茶), 하니족(哈尼族)의 투궈차 (土), 광서뚱족(广西侗族)의 다유차(打油茶),호북투쟈족(湖北土家)의 찌단차(蛋茶),레이차(),서북회민(西北回民)의 싼포우타이완차(三炮台盖碗茶),신강위글족(新疆吾尔族)의 나이차(奶茶), 몽골족(蒙古族)의 나이차(奶茶), 하싸커족(哈克族)의 미쫜나이차(米奶茶), 티벳장족(藏族)의 칭차(), 수우유차(酥油茶), 나이차(奶茶), 잔바차 (糌粑) 등등이 그것 입니다.

티벳 장족(藏族)의 차문화

장족(藏族)은 티벳인들을 일컷는 중국인들의 말로 칭짱고원 및 그 주변지역에 자리잡고 살고 있습니다.

장족(藏族)의 차 역사는 문자기록에 의하면 이미 15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민간전설에 의하면 기원 300-400년 토번 (吐蕃)의 서민들이 마신것은 차가 아니라 나무껍질을 삼아서 만들어낸 즙이였답니다. 이런 나무즙은 청신한 향기를 가지고 있어 냉수보다 그 맛이 더 좋았고 토번(吐蕃)의 왕조가 강대해짐에 따라 주변지역을 침공하고 때때로 당왕조의 변두리에서 전리품을 얻기도 했는데 그 중에는 찻잎 유형의 음료수가 있었습니다. 그때 고대 티벳의 토번(吐蕃)왕국은 비록 찻잎을 빼앗아갔지만 그 용도에 대해서는 잘 몰랐답니다.

장족(藏族)이 차를 마시게 된것은 기원 7세기에 문성공주와 기원 8세기에 금성공주가 서장에 들어오면서 부터였습니다. 전해지는바에 의하면 당정관(唐贞观) 15년(기원 641년)에 문성공주가 제32세 토번 짠푸숭짠깐뿌(吐蕃普松干布)에게 시집을 가면서 가지고 간 예물중에 찻잎이 있었다고 합니다. 문성공주는 차마시기를 좋아하였기에 그녀로 인해 당나라의 차문화와 차마시는 방법이 서장(西藏-티벳을 일컷는 중국말) 전 지역에 전파되었다. 1388년 출판된 《서장왕통계》에 의하면 문성공주는 치즈와 수우유 (酥油)를 만들어서 그 수우유(酥油)차로 손님을 초대했다고 합니다.

토번(吐蕃)시기에 칭짱고원에서는 목축업을 위주로 하였기에 육식과 우유가 주식이었습니다. 그때 이미 차를 마시면 그 소화를 돕고 비타민 등 영양성분을 보충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차마시는 열풍이 온 서장(西藏) 지구에 불게 되었고 그때로부터 내륙지역의 찻잎은 끊임없이 칭짱고원 지역에 들어가고 서장(西藏)서민의 생활필수품 중 없어서는 안되는 하나의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서장(西藏)지역에 운송된 찻잎은 “변차(邊茶)”혹은 “장차(藏茶)”로 불리우게 되었는데 장족(藏族)의 차 마시는 방식은 주요하게 장족(藏族)의 칭차 (), 장족나이차 (藏族奶茶), 수우유차(酥油茶)와 잔바차(糌粑)등 몇가지 방식으로 발전하였습니다.



[티벳인들이 즐겨마시는 장족나이차 (藏族奶茶)]

차는 고원에 살고 있는 장족(藏族)인민에게 있어서 마치 식량, 물, 불과도 같은 존재로서 매일 꼭 필요한 물품으로 심지어 어떤 사람은 “3일 식량이 없어도 괜찮은데 차가 하루 없으면 안된다”라고 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샹그리라에위치한 숭찬림사]

당나라 토번(吐蕃)때부터 불기 시작한 차 마시는 바람은 티벳 사람들의 찻잎에 대한 수요를 날마다 늘어나게 하고 이것은 또 내륙지역과 토번(吐蕃)사이의 찻잎 무역을 대대적으로 촉진하게 했습니다.

고대중국이 필요로 했던 전투마

말(馬)은 군사전투력을 강화하고 국방을 공고히 하는데 크나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고대 중국의 말(馬)들은 모두 북부, 서부 및 서남부 소수민족 지역에서 나고 있었습니다. 화패나 차(茶)로 말을 교환하는 매매 방식은 당나라 이래부터 각 왕조에서 변방국가들과 거래하는 일종의 방식이었습니다.

당정(唐)원년 봉연(封演)은《봉씨문견기(封氏闻见记)》에서

“차는 중원에서 시작하여 변방국가에 유행되고 왕년에 후이좬(回)이 입조(入朝)할때 명마를 타고 들어오고 차(茶)를 가지고 되돌아가다” 라고 하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무측천(武) 만세통천(万通天) 원년(기원 696년) 당현종개원(唐玄宗) 19년(기원731년) 당현종원화(唐玄宗元和)10년(기원815년) 토번(吐蕃)의 사절을 당조(唐朝)에 보내어 세 곳에서 차(茶)로 말(馬)을 교환하여 매매를 할 수 있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티벳지역의 야생마들]

당조(唐朝)의 전투마는 대부분 티벳지역에서 구입했고 내륙지구의 찻잎도 역시 토번(吐蕃)의 사회생활에 아주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사실상 고대 중국의 서부지역 사람들이 실크로드를 따라 중원지구에 말을 팔거나 말을 선물하고 중원에서 그 가치에 해당하는 금백(金帛)을 선물하는 형식이 당개원년(唐元年)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답니다. 단, 그 당시에 말(馬)과 차(茶)의 교환이 일종의 제도로는 형성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차마(茶馬)”교역의 정착

송나라의 차마(茶馬)시장은 송나라 초기에 송나라 왕조에서 주변국가에게 차를 주고 또 주변국가는 송나라 왕조에게 말을 바꾸는것 으로부터 발전해왔습니다. 송태종(宋太宗), 진종()때 이미 중국 서부 국가들과의 관계를 잘 처리하기 위하여 자주 차를 선물했었고 서부지역 국가들은 우애를 표하기 위하여 자주 말을 타고 북경에 와서 말을 선물했는데 송나라는 그 가치에 따라 찻잎과 기타 화폐를 선물했고합니다.

이렇게 되어 말을 선물하는것은 주변구가들이 중원지역에서 말로 다른 물건을 교환하여 매매하는 방식으로 정착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몇년에 한번씩 매매를 진행하다가 나중에는 일년에 한번씩 혹은 일년에 여러번씩 하기로 하였습니다.송나라 초기에 설치한 말(馬)시장은 원(原)(지금의 녕하고원(宁夏固原),위(渭)(지금의 감숙성 용서肃陇西), 덕순(德(지금의 감숙성 임하(甘肃临夏)에도 있게 되었습니다.

남송시기에는 또 여주(黎州)(지금 사천성 한원(四川), 야주(雅州)(지금 사천 야안(四川雅安),됴문(碉门)(지금의사천성 천전四川天全)등 여덟 곳에 말(馬) 시장을 설치하여 운영하였습니다.명나라때 요동(辽东,대동(大同) 등지에 선후로 말(馬)시장을 개설했지만 총체적으로 보았을때 명,청 두 왕조때 개설한 것이 전국 범위에서 볼때 모두 다 서부 지역의 말(馬) 시장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습니다.

송진종함평원년(宋宗咸平元年)(기원998년) 에 말과 화폐의 가치를 예산하기 위하여 “고마사(估)”를 설립했고, 송신종희녕(宋神宗熙宁)7년(기원 1674년) 리기(李杞)를 촉 나라에 보내에 매마사(買馬司)로 임명하여 토번(吐蕃)과의 말(馬) 교역을 진행했습니다.

그때로부터 차마(茶馬)시장은 일종의 변경무역 제도로 명, 청나라때까지 연속되어 왔던 것입니다. 송나라 때부터 명,청 두대에 걸쳐 선후로 성도(成都), 진주(秦州) (지금의 감숙 천수(甘天水)),조주(洮州) (지금의 감숙성 임담(甘肃临)),하주(何州)(지금의 감숙성 영등(甘永登)),감주(甘州)(지금의 감숙성 장액(甘肃张)),영녕(永宁)(지금의 사천성 서수(四川)),북성주(北)(지금의 운남성 영성(云南永))에 차마(茶馬) 시장을 관리하는 차마사(茶)를 설치했습니다.

청나라때 몽골족과의 관계가 개선되어 말(馬)에 대한 수요가 충분하게 되자 차마(茶馬) 시장에 관한 정책도 잠시 중단되었습니다.당나라 중기부터 시작된 차(茶)와 말(馬)의 교환 매매 제도는 청나라 건륭(乾隆)이후에 바로 페지되었습니다.

"차"와 "말"의 교역량과 교역방식

북송(北宋) 때 조정에서 매년 말을 사들인 수량은 약 1만5천필에서 2만필 가량이 되었다고 합니다. 말로 교환한 차의 수량은 많을 때는 일년에1000만근이나 되어 촉나라 차(茶) 연간 생산량의 3분의 1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남송(南宋)의 오승()은 《능개재만록(能改)》에서 이렇게 썼습니다.“촉나라 차(茶)는 모든 토번(吐蕃)지역에 들어가고 호마(胡)는 자주 만리에서 온다.(蜀茶蕃市,

万里)”이것은 차마(茶馬)시장에 대한 일종의 묘사였습니다.

차마(茶馬)시장은 내륙지역에서 티벳의 장족(藏族), 익주(益州)(지금의 사천성 성도(四川成都)), 적령(赤岭)(지금의 청해성 일월산(日月山)), 용주()(지금의 섬서성 용현(西陇县))(蒙古族),위글족(吾尔族),하사커족(哈克族)등 그들의 생활에 필요한 찻잎을 공급하고 변강 소수민족과 국가들은 말을 공급하여 중국변강의 교통과 농업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역사상에서 티벳의 장족(藏族)과 서부소수민족이 차를 마시는 내원은 기본상에 아래의 몇가지 방식이 있었는데

첫째는“공마이차(贡马易茶)”로서 지방관원, 스님 및 황제 책봉을 받은 각 나라 범왕들이 경성에 들어가서 황제에게 말을 선물하거나 기타 특산품을 선물하여 찻잎을 얻는 방식이었고,

둘째는 경성에 들어가는 조공인원이 조공후에 특허를 받아 시장에서 찻잎을 얻는 방식이었고,

셋째는 차마(茶馬)시장을 통하여 찻잎을 얻는 방식이었고,

넷째는 민간에서 사사로이 매매하여 찻잎을 얻는 방식이었습니다.

“차마고도(茶馬古道)”란?

“차마고도(茶馬古道)”는 그 글자 뜻대로 보면 역사상 에서 중원지역과 주변국가 및 민족지간에 서로 차마(茶馬)교역을 진행할때 형성된 상업도로를 의미합니다.

넓은 의미에서 볼때 역사상에서 차마(茶馬) 교역을 한 지방은 중국 서부, 서남지역과 요동(辽东), 진북(晋北) 등지에 널리 있었습니다. 당나라때 서부 지구의 후이좬(回) 의 말 교역은 심지어 장안성까지 이르렀고, 경성에서 3일동안 특허로 열릴수도 있었고 금,은 등으로 찻잎 등 상품과 교환하여 티벳서장(西藏)에 가지고 돌아갈수도 있었습니다.

차마교역의 옛길은 그 범위가 넓어 중국 북부, 서북부와 서남부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진북(晋北),요동(辽东) 등지에서 말 시장을 개설한 시간이 좀 늦고 좀 짧았기에 거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지역이고, 서북부의 차마교역 도로는 거의 다 역사가 유구하고 거리가 멀뿐만아니라 명성이 자자한 고대 실크로드 가운데에 있기에 당,송,명,청이래의 서북의 차마(茶馬)교역은 단지 실크로드의 중요한 상업교역의 한가지 종류로 남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청해로부터 라싸까지의 차마(茶馬)교역 도로도 그 역사가 유구하고 정치,군사면에서 중요한 작용을 하였기에 나중에 계속하여 “강차대도(康茶大道)”라고만 불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나라에서부터 20세기 50년대까지 칭짱(), 촨짱(川藏),땐짱()국도가 개통하기 전까지 계속 사용되었던 길 바로 사천(四川), 운남(云南)에서부터 산맥을 넘어 칭짱고원(藏高原)에서 라싸까지 이어서 인도, 네팔까지의 차마교역도로인 땐짱차마고도(藏茶古道),

촨짱차마고도(川藏茶古道)입니다.

보이차(普)가 이동했던 땐짱차마고도(藏茶古道)

땐짱차마고도(藏茶古道)는 남쪽으로 보이차(普) 산지인 운남(云南)성의 시쐉반나(西),스마우(思茅),따리(大理),리쟝(),디칭(迪),창두(昌都),린즈(林芝)등 지를 경유하여 라싸(拉)에 도달했습니다. 또 라싸(拉)에서 서쪽을 경유하여 쟝즈(江孜),야뚱(亚东)에서 인도까지 또 라싸(拉)에서 서쪽으로 르카저(日喀),띵르(定日)를 경유하여 다시 네라무(拉木), 혹은 지룽(吉隆)에서 네팔까지 경유 합니다.역사상에서 라싸(拉), 르카저(日喀),쟝즈(江孜),창두(昌都),야뚱(亚东) 등 지는 모두 다 티벳서장(西藏)의 상업무역 중심지 였습니다.

이상에 얘기한것은 단지 몇 갈래의 차마고도(茶馬古道)의 대략적인 방향입니다.

고도(古道)에는 민간인에 의한 마방(马帮)의 운수가 빈번하였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이 마방(马帮)은 이전에 팔천필의 노새와 2만마리의 모우(-야크)로 운송을 했다고 합니다. 차마고도(茶馬古道)는 항일전쟁 중기와 후기에 중국서남지역의 전쟁후방의 중요한 국제상업도로의 역할을 했고, 이것도 역시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역사상의 휘황찬란한 한 페이지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칭짱고원에는 현대화된 교통운송도로가 옛날의 고유적인 장거리 마방(马帮)운송을 대체하였고 오지의 마을에 조차도 도로가 뚫리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현재의 마방(马帮)운송은 단지 도로운송의 보충과 마을지간의 짧은 거리 운송으로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많은 도로는 그 옛날의 차마고도(茶馬古道)위에 새로 재건한 것으로 차마고도(茶馬古道)는 이미 역사 속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현재 여행업의 발전에 따라 “차마고도(茶馬古道)여행”은 “실크로드 여행”과 “장강삼협여행”을 이어서 유명한 여행 코스중 하나로 되어 중국내외에 널리 알려지고 있는 시점에 있습니다.



[운남성 옥룡설산과 하바설산의 18킬로 대협곡(호도협)에 만들어져 있는 절벽길 차마고도]

“차마고도(茶馬古道)”는 시쐉반나(西) 따리(大理),리쟝(),샹거리라(香格里拉), 야안(雅安),캉딩(康定),창두(昌都),린즈(林芝) 라싸(拉),쟝즈(江孜),르카저(日喀),야뚱(亚东)등 지를 걸쳐 연결됩니다. 여기에는 아열대 우림지역을 지나 횡단산맥과 고산협곡 및 칭짱고원을 지나 각종 유형의 지세와 경관을 만날수 있는 도로이기도 하지만 순박함을 잃지 않은 소수민족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따이족(),하니족(哈尼族),와족(),라후족(拉祜族),이족(彝族),백족(白族),나씨족(西族),리쑤족(傈僳),장족(藏族)등 많은 소수민족이 살고 있고 그 민족은 또 각자 자기 독특한 생활습관과 문화전통과 복장과 종교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맥을 가로지른 것은 역사상 서남소수민족의 대이동의 통로이기도 했습니다. 이곳 차마고도의 명승고적은 수 없이 많아 사람들에게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 합니다. 멋있는 자연풍경과 다채로운 민족풍습 정서와 수많은 명승고적은 차마고도(茶馬古道) 여행루트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배낭여행 코스로 발전 중에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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