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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픈 길

[바람처럼] 2010. 5. 18. 17:03

생장에서 산티아고까지 카미노 800km의 길






목적지 산티아고 대성당

스페인 북서쪽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소도시가 있다. 줄여서 '산티아고'로 불리는 이곳은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야고보는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되자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이베리아 반도를 향해 1만3000리를 걸어가 복음을 전하다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예루살렘, 로마와 더불어 중세유럽 3대 순례코스로 꼽히는 길이다. 여러 코스가 있지만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 국경 마을인 생 장 피드포르에서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타고 이베리아 반도의 북부를 가로질러 산티아고에 이르는 약 800㎞의 대장정이 가장 유명하다.

도보여행이라면 언뜻 낭만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카미노는 단순히 유럽의 벌판과 산하를 지나는 낭만적인 여행이 아니다. 땀 냄새, 피와 물집으로 부르튼 발바닥, 피로와 배고픔, 불편한 잠자리. 이따금씩 치솟는 과거사에 대한 분노, 잠시 만난 사람과의 이별과 고독…. 이런 불편한 조건 속에서 자기 인생의 짐을 지고 자신의 속도로 걸어나가는 과정이 바로 카미노다.

"경쟁이 아닌 탓에 순례자들은 자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무사히 순례를 마치기를 바란다. 카미노에서 나는 타인을 상대로 경쟁심을 발동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유독 한 사람만은 나를 무자비하게 짓누르려 했다. 그 사람을 피할 수도 없었고 그와의 경쟁을 무시해 버리기도 힘들었다. 그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보어스 교수는 카미노가 인격 그 자체라고 말한다. 오래 힘든 길을 걸어가다 보면 저절로 인격이 갖추어져 그 길 위에 따뜻한 인격이 스며들고, 길은 그런 인격으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들이 예배당이나 대서양을 바라보며 땀 냄새에 찌든 옷가지들을 태우는 장면에선 신성한 아름다움이 감돈다. 산티아고 성당은 지붕에 소각장을 만들어 순례자들이 옷을 태우고 연기는 가능한 한 멀리 날아가도록 했다. 산티아고의 향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땀으로 드리는 향연, 기독교 역사상 예배드릴 때 피우는 가장 큰 규모의 향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