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분의 추기경님
정진석 추기경 탄생…한국 가톨릭 37년만의 최대 경사
![]() 두 번째 추기경 영광 “한국 천주교 제2의 추기경 탄생을 축하합니다.” 22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주교관 앞에서 새로 서임된 정진석 서울대교구장(왼쪽)과 김수환 추기경이 손을 맞잡으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대주교의 옷인 자주색 수단(신부복)을 입은 정 추기경은 3월 25일 바티칸에서 추기경 서임 후 홍의(紅衣)로 갈아입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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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계는 전래 200여 년 만에 김수환(金壽煥·스테파노·84) 추기경에 이어 두 번째 추기경 탄생의 큰 경사를 맞았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2일 오전 10시 50분(한국 시간 오후 6시 50분) 바티칸시티의 교황청 알현관에서 한국의 여성 수도자 모임인 ‘삼소회’ 회원들을 비롯한 일반 신자들과 접견을 하면서 라틴어로 15명의 새 추기경 이름을 발표했다. 여덟 번째로 “한국의 니콜라오 정진석 대주교”란 이름이 나왔다. 앞자리에 있던 삼소회 소속 가톨릭 성공회의 수녀, 불교의 비구니, 원불교의 교무 등 여성 성직자들이 환호를 질렀다. 옆에 있던 다른 나라 신자들도 국적을 초월해 박수로 축하해 줬다.
교황청은 이어 낮 12시 추기경 서임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도 같은 시간인 오후 8시 이를 발표했다.
정 신임 추기경은 교황청 발표 직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주교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에 제2의 추기경이 나오게 된 것은 제 자신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과 한국 천주교회가 세계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크게 참작됐을 것”이라며 “국민 여러분의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교회뿐 아니라 나라 전체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함께한 김 추기경은 “정 대주교가 서울대교구장이 된 후 곧 추기경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흘러 내가 아직 살아 있어서 그런가 하고 자책감을 가졌는데 이제 맘 편히 잘 수 있게 됐다”며 따뜻한 축하의 말을 건넸다.
서울대교구는 정 추기경 서임 감사 메시지를 통해 “새 추기경 탄생은 교회 쇄신과 타 종교와의 화합을 통해 평화와 정의, 사랑에 더 정진하라는 메시지”라면서 “서울대교구는 한국 교회뿐 아니라 아시아 그리고 세계 교회의 큰 몫을 담당하라는 책임감을 느끼며 더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기경은 80세 미만일 경우에만 교황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갖는데 정 추기경은 올해 75세여서 김 추기경과 달리 교황 서거 또는 부재 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갖는다.
정 추기경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성모영보 대축일)’인 다음 달 25일 교황청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리는 공개 추기경회의에서 공식 서임되며 이를 위해 3월 5일 로마로 출국할 예정이다.
서울대교구는 4월 25일 명동성당에서 정 추기경 서임 축하미사를 열 예정이다.
교회법의 대가로 꼽히는 정 추기경은 현재 천주교 청주교구재단 이사장과 주교회의 교회법위원회 위원장,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 가톨릭학원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추기경(樞機卿.Cardinal)은 천주교에서 교황 다음의 권위와 명예가 있는 자리다. 일반적으로 교회의 중추라는 의미로 사용되며, 명칭은 '돌쩌귀'를 뜻하는 라틴어 '카르도(cardo)'에서 유래했다. 흔히 교황이 황제라면 추기경은 '교황청의 원로의원'으로 비유된다.
추기경을 이해하려면 천주교회의 제도적 질서를 알아야 한다. 가톨릭 교회에서 성직자는 크게 주교.사제(신부).부제 세 계층으로 구성돼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명칭은 세 계층을 세분한 이름들이다. 주교 가운데 가장 높은 성직자가 교황, 교황을 선출하고 보좌하는 두 번째 높은 자리가 추기경, 그 다음으로 큰 교구를 담당하는 세 번째 높은 자리가 대주교, 나머지는 주교들이다. 사제들은 흔히 신부로 불리며, 특별히 교황이 임명한 덕망 높은 사제들은 몬시뇰이라 부른다. 엄격한 조직과 계율을 강조하는 천주교에서는 이상과 같은 직책이 엄격한 상하관계를 이룬다.
추기경의 기본적 소임은 최고 수장인 교황을 보좌하는 일이다. 교황은 필요한 분야에 추기경을 '스태프'로 사용할 있다. 천주교 교회법전에는 '추기경은 교회의 최고 목자(교황)를 보필하며, 교황에게 성실히 협조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 그래서 추기경을 임명하는 권한은 교황에게 있다. 추기경은 교황이 집무하는 로마 교황청의 각 성성(聖省.행정부의 부처에 해당), 관청의 장관, 교구별 수장 등 요직을 맡는다. 모든 추기경은 바티칸에 상주하지 않더라도 바티칸 시국의 시민권을 갖는다.
추기경의 권한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교황 선출권이다. 교황이 사망하면 사후 15일 이내에 전 세계 추기경들이 로마의 교황청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에 모여 새 교황을 뽑는다. 교황 선출 과정은 엄격히 비밀에 부쳐져 있다. 그래서 교황 선출 회의는 '문을 걸어 잠근다'는 의미의 이탈리아어인 '콘클라베'라고 부른다. 모든 추기경이 선출권을 가진 것은 아니다. 1971년 교황 바오로 6세 때 추기경의 소임에 연령 제한을 도입, 80세 이상의 추기경들은 교황의 선거권 및 피선거권을 갖지 못하게 했다. 추기경이 종신직인지라 너무 연로한 경우 역할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이론적으로 추기경은 주교의 하나다. 하지만 실질적인 역할이나 비중이 다른 만큼 복장이나 의전 등 대우도 달라진다. 추기경으로 승격하면 보통 바티칸시국이나 해당국에서 '귀빈급'의 의전 대우를 받는다. 추기경이 되면 일단 수단(신부들이 평소에 입는 겉옷)의 색깔이 달라진다. 천주교에선 교황은 흰색, 추기경은 빨간색, 주교는 진홍색, 일반 사제는 검정색(혹은 흰색) 수단을 입도록 규정하고 있다.
주교들이 자신의 신앙과 철학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문장(紋章)의 모양도 추기경이 되면 바뀐다. 문장은 중세 유럽의 귀족들이 자신의 가문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했으나 당시 지방 영주를 겸했던 주교들도 800년 전부터 문장의 전통을 수용했다. 문장은 상단의 모자와 방패, 그리고 그 사이의 십자가, 양옆의 술(기.보자기 등의 둘레나 끝에 장식으로 다는 여러 가닥의 실)로 구성되는데 그 술의 숫자에 따라 성직자의 직책이 구분된다. 예컨대 술이 3단이면 주교, 4단이면 대주교, 5단이면 추기경을 가리킨다. 교황은 술이 없는 대신 예수가 제자인 성(聖) 베드로에게 준 권위와 힘을 상징하는 두 개의 열쇠가 있다. 교황은 성 베드로의 후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