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RATURE

''나의 아버지들''

[바람처럼] 2006. 9. 4. 13:59

나의 아버지들

최진이(탈북여류작가)


북한에 있을 때,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구소련 소설을 읽고 나는 즉시 아버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아버지, 6.25전쟁 우리가 일으켰지요?”

그 소설은 세계적인 구소련 정탐가 리하르트 조리개가 독일군이 소련을 침공할 것과 그 날짜까지 스탈린에게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이 그를 불신하여 대책을 취하고 있지 않다가 결국은 독일군의 침공에 숱한 희생을 치르고 후퇴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상황을 상세히 다루고 있었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6.25전쟁사를 구소련의 사례와 비교하게 만드는 엉뚱한 효과를 일으켰다.

내가 북한에서 한교 교육과 수차례의 조국해방전쟁 기념관 참관을 통하여 지겹도록 주입받은 것, 즉 남측이 일으킨 전쟁 개시 이삼일 만에 북한이 이룩했다는 이른바 ‘서울 해방’ ‘대전 해방’ 전과들은 내가 잊겠다고 해서 잊혀질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북한군이 해방 오 년간에 아무리 ‘일당백’으로 훈련되었다 한들 작전을 하고 공격해 오는 남한군을 하루 이틀 사이에 무찌르고, 게다가 상대의 종심 지역 너머까지 진공한다는 것은 이쪽의 공격 준비없이 저쪽의 무방비 상태가 아니고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확신이 섰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자신있게 물었다. 내 나이가 스물두 살인가 세 살 때였다.

“아니야. 남조선에서 먼저 일으켰어.”

하도 뜻밖의 질문인지라 잠시 멍해 있다가 조급하게 내뱉는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그럼 왜 우리가 후퇴보다 공격을 먼저 했지요?”

“으음......?”

아버지는 또 말을 못하고 안타깝게 갑짜르기만(끙끙대기만) 했다. 아마도 이러한 의문은 아버지가 평생 가져보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아니가지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애썼던 것인지도 몰랐다. 아버지가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그때 방송에서랑 남쪽에서 먼저 침공했다고 다 말했어요.”

“방송에서 무슨 거짓말을 못하게요!”

아버지는 재차 말문이 막혀했다. 나는 더 묻기를 단념하였다. 내가 나의 새로운 ‘발견’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니 그들은 내가 지금껏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들려주었다. 6.25전쟁 당시 38선에서 군복무한 사람의 얘기인데, 1950년 6월 중순에 들어서면서 군부대 병사들에게 갑자기 술이며 통돼지들이 질퍽하게 공급되더라고 했다. 병사들은 영문 몰라하며 배가 터지도록 먹고 마시고 했다. 그로부터 꼭 일 주일째 되는 날 새벽같이 남쪽이 공격해온다며 남조선 진공 명령이 부대에 떨어져 정신없이 총 들고 뛰어나갔다고 했다. 역시 나의 추측대로였다. 순간, 그 시대를 그것도 인텔리로 살아온 아버지가 사건의 진실을 정말 몰랐을까 하는 의문이 다시 일면서 기분이 씁쓸했다.

아마 이때 아버지가 “아, 정말 그랬구나. 아버진 왜 그 점에 대하여 생각 못했을까?”라든가, 최소한 “네 말이 이치에 맞긴 하다. 그러나 어디 가서 함부로 그런 말을 하지 말아라” 아니면 “김일성이 나라를 통일시키려는 욕심으로 무리를 했다” 정도만 말했더라도 아버지에 대해 최소한의 존경심은 가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는 끝까지 “방송에서 남쪽이 먼저 침공했다고 했어요”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당신이 당당하지 못할 때 특히 경어를 꼬박꼬박 쓰셨다.

한국에 와 육 년째 접어들면서 나의 아버지와 흡사한 사람들을 가는 곳마다 부딪힐 수 있는데 대해 그렇게 아연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절대 평범한 일반 계층이 아니었다. 나의 아버지가 한때의 혁명가이고 인텔리였듯이 한반도 통일 위업의 최전선에서 헌신한다고 자처하는 진보 인텔리 계층의 인사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북한은 사람 살 사회가 아니라고 말하니 “예전엔 우리 한국도 그랬어요” 하고 대답했다. 한국을 사람 못살 사회로 만들었던 위정자들에 대해서는 ‘독재자’라고 정도 이상의 욕을 해대면서 북한을 예전의 한국, 아니 그 이상의 비인간적 사회로 전락시켜 놓은 당사자들에 대해서는 동일한 평가를 내리기를 꺼려해하는 것이었다. 그냥 그저 “공정해야 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우리 아버지가“방송에서 남쪽이 먼저 침공했다고 했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하나도 차이가 없었다. 남북의 분단은 외세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북에 있는 이런 ‘나의 아버지들’ 때문에 이루어졌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확신이 내 머릿속에 처음으로 강하게 들었다.

『국경을 세 번 넘은 여자 최진이』에서